집은 결국 가족의 시간을 담는다 405

[ 연재 ] 집은 가족을 닮아간다 11. 집은 결국 가족의 시간을 담는다   집은 처음부터 가족을 닮아 있지 않습니다 . 처음에는 벽과 바닥 , 문과 창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간일 뿐입니다 . 새로 입주한 집은 낯설고 반듯합니다 . 가구의 위치도 아직 어색합니다 . 어디에 무엇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집은 달라집니다 . 자주 앉는 자리가 생깁니다 . 늘 가방을 내려놓는 위치가 정해집니다 . 식탁에서는 반복되는 대화가 쌓입니다 . 아이의 키가 자라면서 수납의 높이도 달라집니다 . 부모의 걸음이 느려지면서 문턱과 조명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 처음에는 사람이 집에 적응합니다 . 그다음부터는 집이 가족의 생활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 가족이 반복하는 행동은 공간에 흔적을 남깁니다 . 어떤 집은 식탁이 중심이 됩니다 . 어떤 집은 거실 소파가 중심이 됩니다 . 누군가에게는 주방이 가족을 이어주는 공간이 됩니다 . 아이 방 앞 복도나 햇빛이 드는 창가가 중요한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 그래서 집을 이해하려면 면적과 구조만 봐서는 부족합니다 . 그곳에서 가족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 하지만 집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시간입니다 . 오늘은 이 연재의 마지막 이야기로 , 집이 어떻게 가족의 시간을 담고 그 시간이 다시 집의 모습을 바꾸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집의 진짜 모습은 생활이 시작된 뒤에 드러납니다 새집은 깨끗합니다 . 바닥에는 물건이 없습니다 . 수납장은 비어 있습니다 . 식탁 위에도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습니다 . 사진으로 보면 완성된 공간처럼 보입니다 . 하지만 건축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때의 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 가깝습니다 . 사람의 생활이 들어오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 가족이 이사해 오면 공간의 역할이 달라집니다 . ...

조경은 집을 시원하게 만드는 첫 번째 에어컨이다 379

[연재] 집은 정원까지 설계되어야 완성된다

8. 조경은 집을 시원하게 만드는 첫 번째 에어컨이다

 

여름이 되면 가장 먼저 켜는 가전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에어컨입니다.

실내 온도를 빠르게 낮춰줍니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지만 건축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에어컨보다 먼저 집을 시원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조경입니다.

조경은 단순히 집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 아닙니다.

집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햇빛을 조절합니다.

바람을 만듭니다.

땅의 열을 낮춥니다.

실내까지 들어오는 열도 줄여줍니다.

그래서 잘 설계된 조경은 에어컨이 작동하기 전부터 집을 시원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전 사람들은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여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경입니다.

오늘은 왜 조경이 집을 시원하게 만드는 첫 번째 에어컨이라고 할 수 있는지, 건축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름철 집은 햇빛보다 열을 먼저 막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에는 햇빛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축가는 햇빛보다 열을 먼저 생각합니다.

햇빛이 벽에 닿습니다.

창문을 통과합니다.

바닥도 달아오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은 집 안으로 계속 전달됩니다.

한번 뜨거워진 콘크리트와 벽은 쉽게 식지 않습니다.

밤에도 열을 내보냅니다.

그래서 실내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습니다.

건축가는 열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줄이는 방법을 먼저 고민합니다.

그 역할을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조경입니다.

 

나무 그늘은 자연이 만든 차양입니다

여름철 큰 나무 아래에 서 보면 금방 시원함을 느낍니다.

단순히 햇빛이 없어서만은 아닙니다.

나무는 강한 직사광선을 먼저 받아줍니다.

벽과 창문이 직접 달아오르는 것을 막아줍니다.

땅도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복사열도 줄어듭니다.

건축에서는 외부에서 열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냉방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물 안에 커튼을 치는 것보다.

건물 밖에서 햇빛을 막는 차양이 더 효과적입니다.

나무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자연스러운 차양 장치입니다.

 

나무는 스스로 주변 공기를 식힙니다

조경이 시원한 이유는 그늘 때문만이 아닙니다.

나무는 잎을 통해 수분을 증발시킵니다.

이를 증산작용이라고 합니다.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의 열을 함께 가져갑니다.

그래서 나무 주변 공기의 온도가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같은 여름날이라도 아스팔트 위와 숲속의 체감온도가 다른 이유입니다.

건축가는 이 자연의 냉방 원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에어컨처럼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이 스스로 공기를 식혀주는 것입니다.

 

잔디와 흙도 집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콘크리트 바닥은 햇빛을 그대로 흡수합니다.

낮 동안 열을 저장합니다.

밤에도 쉽게 식지 않습니다.

반면 흙은 다릅니다.

수분을 품고 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열을 함께 가져갑니다.

잔디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잔디가 있는 마당은 콘크리트 마당보다 훨씬 시원합니다.

건축가는 마당을 단순한 빈 공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집 주변 온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장치로 생각합니다.

좋은 흙과 잔디는 작은 냉방 시스템과 같습니다.

 

조경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열도 줄여줍니다

여름철 가장 많은 열이 들어오는 곳은 창문입니다.

유리는 햇빛을 통과시킵니다.

실내 바닥과 벽이 뜨거워집니다.

이를 온실효과라고 합니다.

그래서 창문 앞에 적절한 위치의 나무를 심으면 효과가 매우 큽니다.

강한 직사광선을 먼저 차단합니다.

실내 온도가 훨씬 천천히 올라갑니다.

특히 서향 창문은 오후 햇빛이 매우 강합니다.

이곳에 적절한 낙엽수를 배치하면 여름철 냉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창문과 조경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합니다.

 

조경은 바람도 함께 만듭니다

앞선 글에서 바람길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무는 바람을 막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적절한 위치에서는 시원한 공기를 집 쪽으로 유도합니다.

강한 바람은 부드럽게 만듭니다.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려 보냅니다.

시원한 공기는 아래쪽으로 흐르게 합니다.

여름철 숲길이 시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경은 공기의 흐름까지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축가는 이를 적극 활용합니다.

 

도시는 뜨거워지고 조경은 더 중요해졌습니다

요즘 여름은 예전보다 훨씬 덥습니다.

도시에는 콘크리트가 많습니다.

아스팔트도 많습니다.

유리 건물도 많습니다.

이들은 낮 동안 많은 열을 저장합니다.

밤에도 계속 열을 내보냅니다.

이를 도시 열섬현상이라고 합니다.

반면 나무와 흙은 다릅니다.

열을 줄여줍니다.

공기를 식혀줍니다.

도시가 뜨거워질수록 조경의 역할은 더욱 커집니다.

건축가는 앞으로의 집에서 조경이 더욱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경은 냉방비도 줄여줍니다

집이 처음부터 덜 뜨거워지면 에어컨도 덜 사용하게 됩니다.

실내 온도가 천천히 올라갑니다.

설정 온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에어컨 가동 시간도 줄어듭니다.

결국 전기요금도 줄어듭니다.

조경은 보기 좋은 장식이 아닙니다.

생활비를 줄여주는 설비이기도 합니다.

건축가는 이를 패시브 냉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를 사용하기 전에 자연으로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좋은 조경은 사계절을 함께 생각합니다

여름만 시원하면 좋은 조경일까요?

건축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에는 햇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봄에는 꽃이 피어야 합니다.

가을에는 계절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낙엽수를 많이 활용합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듭니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져 햇빛을 들여보냅니다.

좋은 조경은 계절을 바꾸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여름 냉방과 겨울 난방을 함께 도와주는 것입니다.

 

건축가는 에어컨보다 먼저 나무를 생각합니다

집이 더워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햇빛 때문입니다.

열 때문입니다.

공기의 흐름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 주변 환경 때문입니다.

건축가는 이 문제를 기계보다 먼저 자연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나무를 심습니다.

흙을 남겨둡니다.

잔디를 계획합니다.

바람길을 만듭니다.

그늘을 설계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경은 여름 내내 집을 조금씩 시원하게 만들어 줍니다.

에어컨처럼 순간적으로 온도를 낮추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집이 뜨거워지는 속도를 늦춰 줍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좋은 집은 에어컨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먼저 이용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가는 조경을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집을 시원하게 만드는 첫 번째 에어컨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은 건물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정원이 함께 설계될 때 비로소 사계절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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